2008년 08월 20일
노랑눈썹이 떠난 자리
글쓰기에 대한 작가들의 조언을 가만히 경청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테지만, “매일같이 꾸준히 글을 쓰라”는 원칙은 정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항상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 중의 하나다. 그러나 외부 강제가 없는 한 이 원칙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실천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시간부족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 생각으로는, 습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성공한 작가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일찍이 글짓기에 재능을 보여 주위의 관심을 독차지하였다거나 가족 중에 글 쓰는 이가 있어 글쓰기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거나 하는 이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매일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쓰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도 당연한 습관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그것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낸 토대가 되었음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그에 반해 유년과 학생 시절을 통틀어 글쓰기와는 아무런 인연도 연고도 취미도 없이 살았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밥 먹듯이 글을 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인즉슨, 습관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걸 글로 풀어내고 나면 며칠 동안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정말 하나도 들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쓴다는 것에 약간 질려 버리게 된다. 책을 읽거나 다른 매체 등을 접하는 동안은 의식적으로 글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며칠 글과 담을 쌓고 지내나 보면 뚜껑 열린 독에 빗물이 조금씩 차오르듯 마음에 글자들이 하나 둘 쌓이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의 게으름을 자책하면서 나는 다시 펜을 든다. 펜을 드는 그 순간에도 양가감정은 여전하다. 실타래처럼 엉겨있는 생각을 어서 빨리 논리 정연한 글로 엮어내려는 의욕,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기까지는 또 감옥에 갇힌 것처럼 한없이 답답하겠지 라는 걱정. 사정이 이러하니 글을 다 쓰고 나면 무언가를 성취하였다는 만족감보다는 지긋지긋한 빚을 청산한 듯한 기분이 더 강하게 든다. 그 청산이라는 것도 깔끔한 청산이 아니라 원금에 한참 못 미치는 어설픈 빚잔치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글쓰기 습관의 문제점에 대한 약간의 고민 외에는 모든 것이 여느 평일 오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읽던 책을 물리고 신문을 막 뒤적였을 바로 그 무렵, 마치 어린아이가 손바닥으로 힘차게 유리창을 때리는 듯한 '딱' 하는 소리가 내 일상의 정적을 깨뜨린다. 등을 돌려 베란다 유리문 쪽을 돌아보려던 찰나, 두 가지 생각이 빠르게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도둑이 든 걸까? 아니면 이번에도 또?
창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 마당에 역시 새가 떨어져 있었다. 왜 또 하필이면! 이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새어 나왔다. 새는 이번에도 풍경을 반사하고 있는 유리창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거울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작년에 한 번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처음만큼은 놀라지 않았지만 저 작은 새가 그렇게 큰 충돌음을 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나는 다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블라인드를 반쯤 내려놓고 지낸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일년 전의 약속을 내 자신이 보기 좋게 어긴 꼴이다. 나의 부주의와 불찰을 책망해보았자 이미 벌어진 사건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직박구리나 박새와 같은 텃새들은 비교적 인간들의 주거와 생활 습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여간해선 유리창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반면 철새나 나그네새는 그리 약지 못하다. 작년에 우리 집 베란다 유리창에 부딪혔던 녀석은 겨울 철새의 일종인 상모솔새였다. 이번에는 노랑눈썹솔새다. 녀석도 상모솔새만큼 조그맣다. 몸길이가 10센티 정도에 불과하다. 충돌 당시의 소리만 놓고 보면 노랑눈썹솔새의 충격이 상모솔새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 같다.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큰 소리가 났던 것인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할수록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정말 죽기라도 할까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노랑눈썹솔새는 질끈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린다.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녀석 또한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창 이편에서 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새는 잠을 잔다기보다는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새가 다시 날 수 없게 된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고쳐줘야 한다.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다면 집에서 평생 키워야 할 것이다. 10여분의 시간 동안 나는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새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문득 새는 감았던 눈을 뜬다. 까맣고 단단한 눈동자로 창 너머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요량인 것처럼 조금씩 목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이제 그만 되었다, 는 뜻이었을까. 노랑눈썹솔새는 웅크렸던 몸을 풀고 낮은 관목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녀석은 나에게 등을 보인 채 가느다란 가지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꿈을 깬 녀석 앞에는 이제 남방 어딘가로 날아가는 긴 여정이 남아 있었다. 노랑눈썹솔새는 가을에 단지 1-2주 동안만 한국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새이다. 그 짧은 체류 시간 중 녀석과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잠시 마음을 졸였다. 부디 따뜻한 곳에 가 건강하게 올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노랑눈썹솔새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녀석이 떠난 자리는 벌써 가을이었다.




말인즉슨, 습관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걸 글로 풀어내고 나면 며칠 동안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정말 하나도 들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쓴다는 것에 약간 질려 버리게 된다. 책을 읽거나 다른 매체 등을 접하는 동안은 의식적으로 글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며칠 글과 담을 쌓고 지내나 보면 뚜껑 열린 독에 빗물이 조금씩 차오르듯 마음에 글자들이 하나 둘 쌓이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의 게으름을 자책하면서 나는 다시 펜을 든다. 펜을 드는 그 순간에도 양가감정은 여전하다. 실타래처럼 엉겨있는 생각을 어서 빨리 논리 정연한 글로 엮어내려는 의욕,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기까지는 또 감옥에 갇힌 것처럼 한없이 답답하겠지 라는 걱정. 사정이 이러하니 글을 다 쓰고 나면 무언가를 성취하였다는 만족감보다는 지긋지긋한 빚을 청산한 듯한 기분이 더 강하게 든다. 그 청산이라는 것도 깔끔한 청산이 아니라 원금에 한참 못 미치는 어설픈 빚잔치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글쓰기 습관의 문제점에 대한 약간의 고민 외에는 모든 것이 여느 평일 오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읽던 책을 물리고 신문을 막 뒤적였을 바로 그 무렵, 마치 어린아이가 손바닥으로 힘차게 유리창을 때리는 듯한 '딱' 하는 소리가 내 일상의 정적을 깨뜨린다. 등을 돌려 베란다 유리문 쪽을 돌아보려던 찰나, 두 가지 생각이 빠르게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도둑이 든 걸까? 아니면 이번에도 또?
창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 마당에 역시 새가 떨어져 있었다. 왜 또 하필이면! 이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새어 나왔다. 새는 이번에도 풍경을 반사하고 있는 유리창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거울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작년에 한 번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처음만큼은 놀라지 않았지만 저 작은 새가 그렇게 큰 충돌음을 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나는 다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블라인드를 반쯤 내려놓고 지낸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일년 전의 약속을 내 자신이 보기 좋게 어긴 꼴이다. 나의 부주의와 불찰을 책망해보았자 이미 벌어진 사건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직박구리나 박새와 같은 텃새들은 비교적 인간들의 주거와 생활 습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여간해선 유리창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반면 철새나 나그네새는 그리 약지 못하다. 작년에 우리 집 베란다 유리창에 부딪혔던 녀석은 겨울 철새의 일종인 상모솔새였다. 이번에는 노랑눈썹솔새다. 녀석도 상모솔새만큼 조그맣다. 몸길이가 10센티 정도에 불과하다. 충돌 당시의 소리만 놓고 보면 노랑눈썹솔새의 충격이 상모솔새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 같다.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큰 소리가 났던 것인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할수록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정말 죽기라도 할까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노랑눈썹솔새는 질끈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린다.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녀석 또한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창 이편에서 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새는 잠을 잔다기보다는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새가 다시 날 수 없게 된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고쳐줘야 한다.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다면 집에서 평생 키워야 할 것이다. 10여분의 시간 동안 나는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새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문득 새는 감았던 눈을 뜬다. 까맣고 단단한 눈동자로 창 너머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요량인 것처럼 조금씩 목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이제 그만 되었다, 는 뜻이었을까. 노랑눈썹솔새는 웅크렸던 몸을 풀고 낮은 관목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녀석은 나에게 등을 보인 채 가느다란 가지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꿈을 깬 녀석 앞에는 이제 남방 어딘가로 날아가는 긴 여정이 남아 있었다. 노랑눈썹솔새는 가을에 단지 1-2주 동안만 한국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새이다. 그 짧은 체류 시간 중 녀석과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잠시 마음을 졸였다. 부디 따뜻한 곳에 가 건강하게 올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노랑눈썹솔새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녀석이 떠난 자리는 벌써 가을이었다.




# by | 2008/08/20 17:45 | diary | 트랙백 | 덧글(1)






